중심성 장액성 맥락막 병증(CSC) 후기

몇달 전 아침 일어났는데 갑자기 눈에 비늘 같은 게 낀 것처럼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더라고요. 당시 한 사나흘 연달아 하루에 잠을 3~4시간 정도밖에 못 자는 바람에 눈에 피로감이 누적돼서 그런가? 아님 이제 본격적인 중년에 들어서서 노안이 왔나? 싶은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그런데 '하루 이틀 푹 자고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면서 며칠을 보냈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계속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더라고요. 안경을 쓰면 더 어지러워서, 잘 안 보여도 안경을 벗고 지냈는데 PC를 보면서 일을 해야 할 때는 화면이 잘 안 보여서 정말 고역이었죠.(안경을 쓰면 어지러우니...)

 

그러다가 우연히 휴대폰으로 웹페이지를 보는데 웹브라우저 상단 좌측 테두리 부분이 살짝 굽어서 보였죠. 그리고 그 부근에 둥근 모양으로 약간 검은 그림자 같은 것도 보이고요. 그래서 관련 증상을 찾아보니, "황반변성"이라는 무서운 질환과 사물이 굽어보이는 증상이 거의 똑같더군요. 대개 60대 이상 노인에게 잘 발생하며 전체 인구 중 약 3%에게 온다는 이 질환이 왜 하필 나같은 사무직 노동자에게??? ㅠ 정말 온갖 잡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혹시나 조기에 치료하면 "실명"까지는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바로 안과로 달려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았습니다.(다행히 그 안과는 CT 촬영 장비가 있어서 대학병원 같은 상급 병원에 안 가도 되었음)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진찰실에 갔더니, 의사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는데요. 황반변성이 아니라 태어나 처음 듣는 이름인 "중심성 장액성 맥락막 병증(CSC, Central Serous Chorioretinopathy)"이라는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일단 여기서 안도의 한숨을....)

 

CT로 망막을 단층촬영한 모습을 여러장 보여주시는데, 상이 맺히는 망막 근처가 볼록하게 부어있더라고요. 이 질환이 발생하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있지 않지만, 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스테로이드 사용을 하는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고 하네요. 당시 상황을 봤을 때,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피부과 스테로이드 처방 등이 정확히 일치하더군요. 주로 40~50대 남자에게 잘 생긴다는 통계와도 잘 맞네요.

 

일반적으로 특별한 약을 먹지 않아도 3개월 안에 자연스럽게 좋아지지만, 네이버 카페 등을 검색해보니 3개월~1년이 지나도 낫지 않아서 안구에 주사 치료를 하는 분들도 많아서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ㅠ

 

어쨌든 제가 갔던 안과에서는 스트레스 받는 일을 피하고 스테로이드 치료는 잠시 중단하라고 권고하는 동시에, "중심성 장액성 맥락막 병증"에 흔히 사용하는 2가지 약물을 처방해줬어요.

 

그 중 하나는 "엔테론"이라는 정맥/림프기능부전, 망막순환 장애 치료제로서 아래 사진같은 형태인데 지름이 5~7mm 정도로 아주 작은 노란색 알약이네요. 하루에 3번 식후 섭취... 

 

한림제약에서 나왔는데 포도씨를 이용해서 만든 일종의 혈액순환 촉진제로서 망막 부종을 가라앉혀주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원료약품 및 용법, 용량은 아래 이미지를 참고하세요.

 

다음으로 받은 처방약은 "바로낙"이라는 안약(점안액)인데요. 휴대하기 좋은 작은 통에 약 5mL 정도 양이 담겨있고, 위 알약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3회 눈에 한 방울씩 넣어줘야한다네요.

 

이 바로낙이라는 점안액은 비스테로이성 항염증 치료제인데, 이 질환이 어떤 염증에 의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어서처방하는듯해요.

 

이렇게 두 가지 약을 한 달치 처방받고, 정말 신경을 써서 매일 매일 열심히 먹고 눈에 넣어주고 했죠. 그리고 당연히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은 피하고 잠도 일찍 자고 스테로이드 치료도 잠시 중단했는데요.

 

처음 약 2주 동안은 큰 차도가 없는 것같아서 걱정과 실망도 했는데, 3주 정도 지나니까 동그랗고 검게 보이는 현상이 서서히 옅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4주 정도 지나니 사물이 굽어보이는 증상도 꽤 호전돼서 일상 생활을 하는 데 거의 지장이 없는 수준까지 좋아지더라고요. 아 다행 ㅠㅠ

 

기쁜 마음으로 안과에 가서 다시 CT 촬영을 해보니 사진 상으로는 거의 가라앉은 모습이었죠. 그래서 위 2가지 약을 한 달치 더 처방받아서 왔는데, 특별히 이상이 없으면 더 이상 안 와도 된다고 하더군요. ^^;; 이 중심성 장액성 망막 병증이라는 질환은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아주 높기때문에 최소 1년 이상은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면서 지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병원을 나섰어요.

 

수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인터넷에 이 질환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처음엔 대부분 "황반변성"이라 오해할 만한 점이 많아서 상당히 아쉽고,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네요.

 

마지막으로 저랑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 받는 분들의 쾌유를 빕니다.